20220616 집 앞에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어. 얼마나 환하고 향기로운지 네가 이 꽃들을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이 핑계로 한 번 더 웃고 한 번 덜 울면 좋겠다고. 한동안 서성이다 한참을 머뭇거리다 겨우 발걸음을 뗐지. 너는 이 꽃들을 봐야 해. 얼마나 예쁘게 피었다가 얼마나 허무하게 지는지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이 앞에 서 있었는지 힘 없이 저무는 게 그저 꽃이었는지. 아마 사랑이 다 끝나고 내가 떠난 후에야 너는 알게 될 거야. Come il cuore va./diario 2022.06.16
20220504 일본은 5월 초가 골든위크다. 회사 사람들은 보통 4월 말부터 5월 중순까지 쉰다. 일본 업무를 맡은 지도 벌써 1년이다. 업무 교육이나 인수인계는 없었고, 다들 때 맞춰 휴가 가기 바빴다. 다음 골든위크에 나는 뭐하고 놀까 상상하곤 했는데 그저 일하기 싫어 죽겠는.. 6년차가 되었다. 4월 마지막주는 버그를 미리 잡아내기 위해 분주하다. 그렇게 발악을 해도 골든위크에는 언제나 버그가 발생한다. 꾸역꾸역 해결하고 나면 다행히 업무가 널널해진다. 내가 일하기 싫은 건 골든위크 때문일까 아니면 화창한 봄날씨와 춘곤증 때문일까 2년차 연봉을 줄 수밖에 없다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여서일까 나를 이해하려 애쓰지 않는 이들을 곁에 두어서일까 나는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정말이지 더 멀어지고 싶었다. Come il cuore va./diario 2022.05.04
20220503 우리가 멀어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서로 달랐음을 인정하는 편이 나았다. 내 미성숙함과 착각에서 비롯된, 너에 대한 권리 주장은 그저 오지랖과 객기에 불과했다는 것도 몇 년이 지나서야 알았다. 그마저도 네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몰랐겠지만. 나는 과거를 이야기하는 게 지겹고 내가 사랑했던 것들을 부정해야 하는 게 슬펐다. 그게 다였다. Come il cuore va./diario 2022.05.04
20220301 내가 타지에서 돌아왔을 때 너에게 처음 한 말은 작가가 될래, 였다. 몹시 보고싶었다는 고백도 아니었고 앞으로는 부디 사이좋게 지내자는 당부도 아니었다. 너는 나를 응원했고 그 응원이 진심이었는지 아닌지 물론 이제 상관도 없지만. 또 누군가는 글을 읽기 싫어하면서 글을 쓴다는 게 말이나 되냐고 비웃었고 젊은 애가 이렇게나 책을 읽지 않으니 세상의 미래가 걱정된다며 두어 발자국 앞서나가기도 했다. 여느 때처럼 멋쩍게 웃었다. 글을 쓰고 싶은 게 아니라 글이 되고 싶다는 걸 알았다면 좀 더 제대로 설명할 수 있었을까. 주인공이 될래, 너의 응원이 나에게 닿을지 모르겠다. Come il cuore va./diario 2022.03.01
20220204 춘천에서 입사 전 교육을 받을 때 모두가 기억하고 새겨야 할 제1항이 있었다. 제1항, 장애 발생 시 책임을 따지지 않는다. 빠른 픽스와 재발 방지에 집중한다. 코드를 잘못 짠 주니어, 코드리뷰 당시 발견하지 못한 시니어, 그 시니어를 배치한 조직장, QA를 진행한 조직 구성원 모두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있지만 그것만큼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일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6년차에 접어든 나는, 다행히도 제1항을 기억하고 있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잘잘못을 따지기 시작하면 정작 눈앞에 놓인 중요한 것들을 모두 놓치기 마련이다. Come il cuore va./diario 2022.02.04
20220202 하필 명절이었고 하필 며느라기와 82년생 김지영을 연달아 방송했고 하필 시간이 남아돌아 그걸 다 보았고 커피는 쓰고 초콜릿은 달고 햇볕이 따뜻하고 출근하기 싫다. Come il cuore va./diario 2022.02.02
20220131 새해가 뜰 때 나는 늦잠을 잤다. 나만 늦잠을 잔 것은 아니고 서제원도 늦잠을 잤다. 해가 중천에 오를 즈음 서제원과 산책을 하면서, 안 깨우고 뭐 했냐며 타박을 주고받았다. 그래서 연초부터 인생이 배배 꼬인 것일까. 서강대교 위에서 바들바들 떨며 해돋이를 본 것이 오래 전이다. 오라방과 나는 해가 뜨는 것을 보자마자 어쩌면 해가 뜨려고 꿈틀거렸을 뿐인데도 추워 죽겠고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며 호다닥 내려와 피자를 위장에 밀어넣었다. 따뜻하고 아득한 그리움으로 남은 게 그저 피자뿐이었을까. 어쨌든 그 일이 있고 나는 제주도에 갔다. 6개월 만에 또 부서를 이동하면서 인수 인계에 교육까지 산더미였지만 나를 걱정하는 이들을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내가 상처받았다고 똑같이 상처주기는 싫었다. 사랑해 마지않는.. Come il cuore va./diario 2022.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