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e il cuore va./diario 276

20220904

내가 2년 가까이 일본 팀원들과 일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표정, 말투, 뉘앙스, 시선 처리, 손 동작 등 비언어적인 부분을 캐치해야만 진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나와 함께 일했던 모든 일본인들은 거절처럼 들리지 않게 거절했다. 그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혹은 실례를 범하지 않기 위해 아주 예의바르게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 거절같지 않은 거절을 했다. 그래서 나는 거절당한 지도 모른 채 거절당한 게 부지기수였는데 다른 방안을 찾으라는 한국 팀원들의 설명으로 겨우 상황을 파악하곤 했다. 애매모호한 걸 극혐하는 나로서는 정말 고된 일이었다. 왜 조금 더 분명하고 명확하게 말하지 않는 걸까. 정말 그것만큼 폐를 끼치고 실례를 범하는 일도 없는데. 스스로 눈치없는 게 아니라 ..

20220807

거실 바닥에 누워 뒹굴뒹굴 하다가 포도 두 송이를 씻어 먹었다. 옥수수 찌는 냄새가 온 집안에 퍼져서 외딴 시골 집에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계곡도 못 가고 해수욕장도 못 가고 있는데 왜 자꾸 술 마시고 수영하지 말라는 안전 문자가 올까. 부럽고 짜증났다. 일본어 숙제를 끝내고 옥수수 5개를 아그작아그작 먹으며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라는 영화를 봤다. 같은 음악, 같은 소설을 좋아하고 심지어 운동화까지 똑같던 남녀는 운명처럼 서로에게 이끌려 연인이 되었다. 그리고 어렵게 취업을 하고 하루하루 살아내기 급급한 날들이 계속되며 전혀 특별할 것 없이 이별했다. 화려하고 찬란하게 피었다가 금방 시드는 꽃다발이었다. 아그작아그작 라면땅을 먹다가 그 다음 영화로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를 골랐다. 중세..

20220802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중학교 3학년 때까지 나는 웨딩드레스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내가 9살 때, KBS에서 쿨이라는 드라마를 방영했는데 주인공인 소유진과 구본승은 웨딩플래너였고 당시에는 웨딩플래너가 꽤 각광받던 직업이었다. 거실 한 가운데 직사각형으로 친 모기장 안에 누워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엉뚱하게도 웨딩드레스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너무 어려서 플래너와 디자이너를 구분하지 못한 듯도 싶다. 그림에 영 소질이 없는데 방과 후 수업을 모두 미술로 채워넣자 담임 선생님은 디자이너도 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나를 타일렀다. 서울에는 좋은 학원도 많고 심지어 물감도 다르다며 (세상에 나는 무슨 이런 거짓말에 속았을까..) 상경을 향한 나의 욕구는 불타올랐고, 다행히 공부를 잘했다. 한편, 체육 선생..

20220731

월간 윤종신과 비슷한 거라곤 1도 없는 월간 서예원 을 빙자한, 반복되는 하루 일상기 개빡센 7월도 끝났다. 이달의 가장 큰 이슈는 뭐니뭐니해도 1784 입주다. 그팩이 리모델링에 들어가고, 직원들은 모두 1784로 옮겼다. 입주 환영 기념으로 프룻데이가 돌아왔다. 출근길마다 오렌지도 먹고 자두도 먹으니 기분이 좋았다. 물론 아빠는 컴퓨터 회사에서 과일 가게로 바뀌었냐며 놀렸다. (아빠.. 컴퓨터 회사도 아니야...) 오전 6시 30분에 일어나 이불을 개고 제주도 이마트에서 구입한 19,800원짜리 벙거지 모자를 쓴다. 동방신기의 일본 노래를 들으며 씩씩하게 걷기 시작하면 정확히 1시간 후에 회사에 도착한다. 샤워실에 들러 씻고 옷을 갈아입는다. 머리는 말리기 귀찮기 때문에 대충 물기만 닦고 사무실에 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