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기 싫은 날에는 역시 일기를 끄적이는 게 제일이고 잡다한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으니 교원노조법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재택근무가 1년을 넘어가면서 나는 분당 방구석보다 옥천 본가가 익숙한 사람이 되었다. 현관부터 화장실까지 스무 걸음이 채 되지 않는 원룸이 공허하게 느껴지고 시시콜콜 대화를 나눌 존재가 줄리앙뿐이라는 사실이 꽤나 허망했다. 낙엽을 쓸고 방바닥을 닦고 물고기 밥을 주며 살아가던 어느 날, 난데없이 명절이 찾아왔다. 어린 시절에는 둥구나무 아래에서 고모들과 고모부들과 오빠들을 기다리며 (그들이 양손 가득 사올 과자와 주머니 넉넉히 채워줄 용돈도 물론 기다렸다) 째깍째깍 시계를 보고 또 보고 반대쪽으로 오는 건가 왜 안 오지 또 보고 아무튼 나에게 명절이란 기다림이었고 행복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