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e il cuore va. 292

20220131

새해가 뜰 때 나는 늦잠을 잤다. 나만 늦잠을 잔 것은 아니고 서제원도 늦잠을 잤다. 해가 중천에 오를 즈음 서제원과 산책을 하면서, 안 깨우고 뭐 했냐며 타박을 주고받았다. 그래서 연초부터 인생이 배배 꼬인 것일까. 서강대교 위에서 바들바들 떨며 해돋이를 본 것이 오래 전이다. 오라방과 나는 해가 뜨는 것을 보자마자 어쩌면 해가 뜨려고 꿈틀거렸을 뿐인데도 추워 죽겠고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며 호다닥 내려와 피자를 위장에 밀어넣었다. 따뜻하고 아득한 그리움으로 남은 게 그저 피자뿐이었을까. 어쨌든 그 일이 있고 나는 제주도에 갔다. 6개월 만에 또 부서를 이동하면서 인수 인계에 교육까지 산더미였지만 나를 걱정하는 이들을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내가 상처받았다고 똑같이 상처주기는 싫었다. 사랑해 마지않는..

20211008

"이거 딱 반 병만 마시고 자요." 사수는 와인 한 병과 치즈를 건넸다. 아주 잘하고 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된 것뿐이라고 위로했지만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거라는 걸 안다. 또 그렇다고 내가 죽을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쓰리아웃 당했다고 다시 라운드 못 오르는 것도 아니고 인생 뭐 어떻게든 굴러가겠지만 아마 한 병 다 비우지 싶다.

20210928

나는 여전히 일을 못한다. 세상에 예측할 수 없는 버그란 없고 나는 기어코 그걸 놓치고 만다. 오늘도 꼬박 샐 게 뻔하니 뭐라도 좀 먹을까 하다가 관둔다. 떡볶이도 먹고 싶고 탕수육도 먹고 싶고 먹고 싶은 걸 나열하자니 우주를 다 채울 수 있는데 여전히 살이 찌는 게 무섭고 텅텅 빈 통장잔고가 두렵다. 나는 여전히 잠을 잘 못 잔다. 여전히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다 타고 그러니까 스산한 가을비에 눈물이 나고 떨어지는 낙엽에도 우울하고 슬픈 노래를 들으며 세상 비련의 주인공이 된다. 그저 이쁨만 받고 사랑만 받다가 맛있는 음식 배터질 때까지 먹고 푹 자고 싶다. 어느 노래가사는 여전히 아름답냐고 묻는데 나는 참, 변함없이 후지고 구질구질하다.

20210729

잠 못 드는 새벽이었다. -우리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요. 낮은 목소리가 방 안 가득 울렸고 그럼요,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놀라 하마터면 노트북 전원을 꺼버릴 뻔 했다. 보통 이렇게 사는 걸 잘 살고 있다고 하나? 아닐 것 같은데. 어.. 그러니까.. -그냥 해본 말이에요. 신경쓰지 마세요. 두 번의 혼잣말을 끝으로 화면이 꺼졌다. 내 망설임이 그를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