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e il cuore va./diario 276

20190530

네 번째로 오는 버스를 타야지. 창 밖으로 익숙한 동네를 지났다. 그리고 버스를 잘못 탔다는 것을 직감했다. 지금 당장 내리지 않으면 약속에 늦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지 않겠다고 문자를 보냈다. 어디에서 내릴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한 바퀴 빙 돌아 다시 종점해서 내렸다. 두 눈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지만 그 다음이 무서워 쉽사리 감지도 못했다. 괜찮다며 스스로를 다독인 날과 별 일 아니라며 웃어넘긴 날이 그날의 다음날이, 그 다음날의 다음날이 켜켜이 쌓여갔다.

20190527

어릴 적 나의 포털사이트 닉네임은 로망스틱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로맨틱을 말하고 싶었는데 제대로 알지 못해서 로망스와 -틱을 합해 내멋대로 단어를 지어냈던 것 같다. 그때 로망스라는 드라마가 유행했었다. 그렇게 정확한 철자도 모르고 뜻은 당연히 몰랐던 로맨틱이라는 단어가 왜 그렇게 멋있어 보였는지, 열 살의 나는 아마도 낭만주의자였던 듯 하다. 한때는 로맨스를 꿈꾸고 또 간절히 원했던 적도 있었으나 길지 않은 인생의 끝자락에 서게 되는 날, 로맨틱한 삶을 살았다고 확신할 수 없을 것 같다. 나와 로맨스의 거리는 아주 멀었다. 사실 내가 가까이 두고 무게를 조율해온 것은 로맨스가 아니라 증오였다. 사랑은 증오와 같은 뿌리에 나서 같은 양분을 먹고 자란, 동일한 생명체라고 배웠다. 딱히 누가 그렇게 단정지..

20190520

그냥 넘어가자, 이번 한 번만 제발 그냥 넘어가자. 턱 밑까지 차올라 요동치는 진심을 내뱉을 수 없었다. 그 순간 솔직해짐으로써 우리 관계가 어떻게 끝날지 뻔히 보였기 때문에. 그럼 내가 정말로 혼자가 되기 때문에. 두 팔을 붙잡고 정신없이 흔들다가 머리를 몇 대 쥐어박고 평상시보다 높은 옥타브와 빠른 템포로 너를 몰아붙이고 싶었다. 동굴을 부수고 늪을 헤엄쳐 나를 꺼내오는 너는, 어째서 이따금씩 차가운 대지로 나를 내몰곤 하는지에 대하여. 아마도 나는 할 수 없을 거다. 그러니 이번에도 그냥 넘어가자. 적어도 지금은 혼자가 되고 싶지 않고, 사실 나는 너를 잃는 것을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기에. 너의 그 치졸하고 비겁한 방식이 지겨워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아니 그건 네가 아니라 내 방식이라고 해도 ..

20190518

자고 일어나 바나나와 요거트를 먹었다. 막내가 잔망스러운 동영상을 보내왔고, 경문이는 대뜸 전화해 한참을 놀렸다. 아픈 것도 잊고 크게 소리내어 웃었다. 그다지 깊지 않은 슬럼프에도 온 신경이 곤두섰다. 별 일 없이 흘러가던 일상이 별 게 되어버렸다. 그렇게 사랑해 마지않는 이들의 목소리가 나를 달랬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결코 달라질 것 같지 않은 나의 고질적인 버릇들 끊임없이 애정을 갈구하고 사랑에 목매는, 원하는 것은 어떤 방법을 쓰든 끝내 가지려고 하는 그 못된 마음이 약해지길 바란다. 나는 너의 물건이 아니잖아. 꾹꾹 눌러 담아온 끝에, 더 이상은 인내할 수 없어 겨우 내뱉은 진심이었음을 안다. 얼마나 슬픔에 사무쳐 울부짖었는지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러니 모든 힘을 잃어 결국 상처만 남게 되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