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e il cuore va./diario 276

20190904

나는 가을장마가 싫다. 갈 거면 그냥 가버리지, 뭐가 그렇게 미련이 남아 비를 한바탕 내리는지 모르겠다. 쌓이는 데이터를 외면하고 도망치듯 퇴근했다. 1시간 35분을 달려 도착한 신촌에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비가 너무 많이 오고 나는 우산이 없다고, 언니랑 오빠한테 사이좋게 문자를 남기자마자 휴대폰이 꺼졌다. 최대한 불쌍하게 쪼그리고 앉아 있어야지, 왜 칠칠맞게 우산을 잃어버렸냐고 잔소리할지도 모르니까. 누구라도 좋으니 이 거지같은 상황에서 나를 구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0190819

잠 못 들던 어느 밤에는 이것도 결국은 추억이 될까, 걱정했다. 과일맛 같은 건 없었던 인색한 아이스크림 냉장고 화장실 옆칸에서 들려온 미화원 아주머니의 둘째아들 결혼소식 향도 없고 맛도 없던 어느 커피전문점의 6300원짜리 로열밀크티. 아니 정정하자면 눈을 질끔 감고 메마른 손톱을 뜯어버려야만 하는, 느려지는 발걸음을 재촉하려 애써야만 하는 그런 추억이 될까, 였다. 무섭고 두려운 결말 역시 내 몫이었다.

20190815

타고나기를 그랬는지, 경험치가 쌓이고 쌓여 이랬는지 몰라도 웬만한 일에는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뜬금없이 행복하고 난데없이 만족하며 사는 편이다. 나에게 이유가 있었으니 상대도 그랬을 거라고 내가 버틸 만하니 상대도 당연히 괜찮을 거라고 믿었다. 많은 것이 변한 듯 보였으나 가장 중요한 게 그대로였다. 나의 평온함이 누구를, 얼마나 깊이 찔렀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