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의 포털사이트 닉네임은 로망스틱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로맨틱을 말하고 싶었는데 제대로 알지 못해서
로망스와 -틱을 합해 내멋대로 단어를 지어냈던 것 같다.
그때 로망스라는 드라마가 유행했었다.
그렇게 정확한 철자도 모르고 뜻은 당연히 몰랐던
로맨틱이라는 단어가 왜 그렇게 멋있어 보였는지,
열 살의 나는 아마도 낭만주의자였던 듯 하다.
한때는 로맨스를 꿈꾸고 또 간절히 원했던 적도 있었으나
길지 않은 인생의 끝자락에 서게 되는 날,
로맨틱한 삶을 살았다고 확신할 수 없을 것 같다.
나와 로맨스의 거리는 아주 멀었다.
사실 내가 가까이 두고 무게를 조율해온 것은 로맨스가 아니라 증오였다.
사랑은 증오와 같은 뿌리에 나서 같은 양분을 먹고 자란, 동일한 생명체라고 배웠다.
딱히 누가 그렇게 단정지어 가르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사랑은 곧 증오라고 배웠다.
그래서 그 둘을 더한 애증이라는 단어가
꽤 마음에 들다가도 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사랑은 증오라는 감정을 동반하는 게 아니라 증오 그 자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변하는 마음은 지극히 정상이었다.
죽을 만큼 좋아하지만 동시에 죽을 만큼 싫어하기 때문에
5분 전에는 영원을 말하다가도 10분 뒤에는 이별을 말하는 게 가능했다.
어떤 행동은 운명의 수레바퀴를 기꺼이 멈출 만큼 좋았지만
어떤 행동은 길바닥에 널브러진 쓰레기보다도 싫었다.
어느 날의 눈물에는 너를 안아주고 싶었지만
다시 어느 날의 눈물에는 너를 그대로 놓아버리고 싶었다.
그러므로 무조건적인 사랑과 변하지 않는 마음 같은 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었다.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아, 라는 말보다는
그런 것을 원하지 않아, 라는 말이 적절할 것이다.
심리학을 전공한 언니는 이러한 내 방식에 대해 별다른 말이 없었다.
이유를 묻지 않았고, 속마음을 끄집어내려 애쓰지도 않았다.
어떤 평가를 하거나 내가 잘못했다고 나무라지도 않았다.
다만 사랑과 증오는 하나라고 단언하는 내 고집에 대해,
언니의 표현을 빌리자면 내 방어기제에 대해 조심스럽게 걱정을 내비치곤 했다.
나의 방어기제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로 인해 내가 얼마나 상처받았고 무던히 감내해왔는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밀어냈는지를
가늠할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물론 이것은 전적으로 내 추측이다.
가장 가까이에서 나를 지탱해 온 이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된 근거 있는 추측.
나는 신도 아니면서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어 타인을 평가했다.
어떤 점은 너무나도 사랑하고 어떤 점은 너무나도 증오한다고,
어떤 부분을 너무나 사랑해 문득 손을 잡을 수도 있지만
어떤 부분을 너무나 증오해 휙 돌아서 집에 가버릴 수도 있다고.
신은 어떤 방식으로 상을 주고 벌을 내리는지 모르겠으나
감히 내가 취한 방식은, 문득 내 집으로 끌어들였다가 갑자기 문 밖에 내다버리는 것이었다.
별 걱정없이 살지만 슬픔이 많다거나
쉴 새없이 바쁘지만 열정이 없다거나
정이 많지만 차갑다거나
사랑에 목매지만 사랑하지 않을 때 가장 평온하다거나,
그 모든 평가가 그대로 나였다.
나는 모순적인 사람이고 그게 내가 지켜온 방어기제였다.
그러니까 신 앞에 나는 무죄라고 생각했다.
로맨스는 사라지고 증오만 남는 사랑이라도
나는 내 방식을 존중하기 때문에.
나는 분명히 극복하고 있고
남들이 향하는, 이파리가 무성하고 볕이 잘 드는 그 곳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흠 많고 후진 나라도
온 세상을 탈탈 털어 여기저기 나부끼는 먼지들이 내 몫이라면
그것마저도 사랑할 것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