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e il cuore va./diario 276

20150624

40일 정도 지났나. 공항에서부터 느껴지던 어떤 푸근함. 엄마 아빠가 알면 서운하겠지만, 오랜만에 이 곳에 누워 잠들 생각을 하니 설레면서도 편안하다.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더니, 진짜 그랬다. 집에 가서 좀 누웠으면, 뭐 좀 먹고 좀 쉬었으면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집이 좋다. 언제부터 무엇 때문에, 이곳이 내 집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오랜만에 따뜻하게 잘 수 있을 것 같다.

20150616

배낭여행이 딱 절반 정도 남았다. 나는 한결같은 사람이다. 하루 5곳, 6곳은 봐야 뭔가 여행이지 싶다. 뭐든 금방 좋아하고, 또 금방 싫어한다. 하루에 수십 번도 마음이 바뀐다. 이랬다 저랬다, 변덕이 습관이다. 화났다고 말도 못하면서 잘해주면 또 곧바로 좋아한다. 몰랐으면 좋겠지만, 또 몰라주면 서운하다. 옆에서 성가시게 하는 거 되게 싫어하는데 정작 옆에 아무도 없으면 갑자기 우울해진다. 항상 빚진 마음으로 살아가면서도 또 늘 받는 것에만 익숙하다. 어서 어른이 되고 싶다가도 하루아침에, 넌 이제 어른이야, 그 말이 두렵다. 걔 좀 괜찮지 않냐, 엄청 어른스러워 그 말을 듣고 싶지만 그 한 마디를 위해서만 살아갈 내가 무섭다. 일관적이면서도 모순적인 나새끼.

20150531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혼자 벤치에 앉아 노을을 바라보는데, 이름 모를 누군가가 주고 간 이름 모를 꽃. 이 꽃이 당신에게 웃음을 줄 거에요. 쓸데없는 생각들 사이를 헤엄치다가 심쿵, 오늘도 나는 습관성 심쿵. 돌아가는 버스에 앉아 노래를 듣는데 미친 듯이 슬픈 노래만 흐르기 시작, 창밖으로 보이는 보름달이 너무 예뻐서 울컥. 그렇게 혼자서 이 감정 뭐야, 이거 뭐지 미친, 하고 있는데 갑자기 옆자리 아주머니가 내 어깨를 토닥여주심.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 울고 싶었음. 저 위에 있는 신이 죽기 전에 하루쯤 줄 테니 잘 마무리하고 오라고 한다면 나는 꼭 오늘 이곳으로 오고 싶다. 남들은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다. 내가 지금 이렇다고, 내가 지금 이렇게나 슬프다고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

20150514

보슬비가 내리는 어느 새벽, 친구들을 배웅하고 돌아왔다. 다시 만남이라는 것을 기약할 수 없는 우리가 잘 가라는 말 대신 또 보자는 말로 인사하는 것처럼, 그 인사가 우리에게 남은 약속과 미래가 되기를 바란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은 내 친구이자 가족이 되었다. 며칠에 걸쳐 겨우겨우 마무리하는 이 이별이 앞으로 닥칠 모든 아픔에 맞서는 힘이 되기를, 또 힘껏 일어나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용기가 되기를 바란다. 많은 이들을 아쉬운 눈물로 보내고, 이제는 내가 갈 차례다. 이 날을 예상했었지만 너무 빠르게, 어쩔 줄 모르게 와 버려서 나는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이별인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애들아 정말 고마웠어. 잘 지내, 또 보자.

20150502

여전히 내가 종지그릇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기는 참 어렵다. 제일 예쁜 나이 스물 세 살, 겁도 없이 여기까지 왔다는 말은 못하겠고 비행기에 올라타던 순간까지 매일을 부들부들 떨며 가기 싫다고 징징거렸다. 혼자가 되면 너무 보고 싶을까봐, 하루에도 세 네 번은 보던 친구들에 정 떼겠다고 하루 한 번 보기를 시전하다가 역시 너는 병신이야, 혼이 나기도 했다. 나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1도 못 알아듣겠고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0도 모르겠을 때, 아무리 괜찮은 척 하려고 해도 이건 아니지 싶었을 때 꺼냈던 옷가지를 다시 챙겨 캐리어를 잠그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알아볼 때, 어렵게 꺼낸 내 이야기에 괜찮다고, 아무도 널 나무라지 않을 거라고 안심시켜준 서지원씨가 참 보고 싶은 날이다. 조금만 ..

20150424

이곳에서의 마지막 수업이 끝났다. 특히 머저리 같은 나를 더 챙겨준 마틴에게는 복주머니를 선물했다. 우리나라는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며 복주머니를 선물하니까. 셔틀을 타고 다운타운 캠퍼스에 도착하자마자, 운명처럼 여권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곧바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와 여권을 챙겼다. 다시 셔틀을 타는데, 자리에 앉자마자 운명처럼 비가 내렸다. 정말 운명 같은 하루다. 정신 못 차리고 기다리게 한 죄로 로사빈에게 뺨 한 대씩 맞고 술에 취해 길바닥에 잠든다면, 이 운명 같은 하루가 완벽하게 마무리될 것 같다.

20150423

미국 정치의 마지막 수업이 끝났다. 수업이 끝나고 로빈이를 챙겨 링컨 파크로 향했다. 오랜만에 혼자하는 외출이었다. 레드라인을 타고 플러턴에 내렸다. 확실히 부자 동네는 다르다. 친절한 미국 할머니를 만나 길을 묻고 물어 겨우 링컨 파크에 도착했다. 날이 정말 맑았다. 세상이 따스해진 느낌이었다. 링컨 파크를 거닐며 생일 기념 사진들을 마무리했다. 다시 레드라인을 타고 벨몬트에 내렸다. 마셀에서 캐리어를 하나 샀다. 이름을 짤랑이로 지었다. 왜냐하면 짤랑이는 주황색이기 때문이다. 다시 레드라인을 타고 시카고에서 내렸다. 언니랑 경령이는 몬로에서 기다리고 있겠지만, 배가 고파 참을 수 없었다. 루스에 가서 트리뷴을 먹었다. 최고였다. 배가 부르니 다시 힘이 났다. 몬로에 있는 타겟에서 애들을 만났다. 지퍼..

20150420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월요일은 지옥 같다. 국제정치경제랑 사회학개론이 끝나고 방으로 돌아왔다. 화장을 하고 경문이와 통화를 했다. 오늘은 애들끼리 술을 한 잔 했던 모양이다. 경문이는 혼자 집에 가는 길이면 종종 전화를 하곤 했다. 예전에는 항상 같이 가던 길인데. 그 길을 술에 취해 혼자 가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언니랑 국제정치수업에 같이 갔다. 비록 망할 미국 애들이 전쟁을 하든 식민지를 하든 사과하면 끝난 일 아니냐, 이미 지난 일인데 어쩌냐 따위의 막말을 하는 바람에 수업이 훈훈하게 마무리 되지는 않았다. 어쨌든 언니의 청강은 끝이 났다. 하여간 미국 애들은 이렇게 못 배운 티를 내는 게 문제다. 언니랑 디노빌리에서 밥을 먹고, 빈이를 만나러 다운타운에 갔다. 역시나 늘 그..

20150417

오늘은 어제보다 날씨가 좋았다. 캠퍼스 잔디에는 도시락 먹는 학생들, 누워서 낮잠 자는 학생들, 심지어는 원반던지기 놀이를 학생들로 가득했다. 따뜻한 햇살 덕분에 공강 시간마다 캠퍼스를 거닐었다. 떠날 때가 다 되어서야 여유가 생겼고, 정을 끊어야 할 때가 다 되어서야 이곳을 좋아하게 되었다. 우리네 인생사가 그렇듯 인간 유형의 전형 중에 전형인 내가 특히 그렇듯. 오늘도 그렇게 시간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흘렀다. 셔틀을 타고 다운타운 캠퍼스로 가는 내내, 창문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언젠가의 그날처럼, 다시는 올 수 없는 이곳을 담아두었다. 수업이 끝나고 혼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이벤트 사진을 마저 찍었다. 갑자기 해가 뚝 떨어지는 바람에 그나마 남아 있던 방향 감각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2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