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e il cuore va. 292

20150320

무섭다는 말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대지에 남은 물 몇 방울에 의지해 별이 피고 폭우 속에서도 해바라기가 빛을 닫지 않았듯이, 나도 어떻게든 뿌리를 내려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다는 안도의 눈물을 흘리고 싶다. 간혹 그 뿌리가 너무 얕아 알 수 없는 시공간에 흩어지더라도 다시 내려앉게 될, 그 하늘도 땅도 아닌 곳에서 비로소 내가 너를 만났다고 말하고 싶다.

20150216

구름이 구름 모양으로 생기지 않았다는 걸 알았을 때 모든 나무에 빨간 사과가 열리지는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 두 개의 산, 그 왼쪽에는 노란 해를 그리고 오른쪽 아래쯤에 세모난 지붕을 가진 집, 굴뚝으로는 동그란 연기 세 개 집 앞으로 흐르는 강에는 물고기 네 마리. 행복한 그 집은 정말로 그림이 되었다. 그래서 들어오는 문도, 나가는 문도 없이 네 칸짜리 창문만 있었나보다. 똑똑 정도는 할 줄 알았는데, 현실이 창문을 부수고 들어오려고 한다. 건방진 것. 안녕, 오랜만이야 우리 집.

20150208

주저말고 돌아와. 예전처럼 안아줄게. 너의 그 걸음에 내가 옆에 있을게. 그 말들이 얼마나 따뜻하던지. 비 오는 날 아늑한 침대에 누워 이불을 발 끝까지 고이 덮고 누워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는 천장으로 그 천장을 따라 이어진 창문으로 그 창문 너머로 흐르는 빗방울로, 내 시선이 머무는 곳에 네가 서 있었다. 아주 잘 했어, 이리와 하고 세상 크게 웃으며 나를 안아주었다.

20150122

벌써 이곳에 온 지도 보름이 넘었다. 여전히 영어는 못 하겠고, 수업은 하나도 못 알아듣겠고 오후 4시만 되면 깜깜해지는 이곳이 익숙하지 않지만 이곳에서 살던 시간들은 잘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원래 내 자리가 좋은 이유는 열 가지도 넘게 말할 수 있고 내가 미국을 싫어하는 이유는 백 가지도 넘게 말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이곳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웃고 행복할 수 있는 이유는 왠지 설명하기가 조금 어렵다. 그래서 누군가 괜찮냐고 물어보면, 나 정말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20140926

선배 커플을 만났다. 네가 돌멩이라도 좋다고, 와 어쩌면 그런 말을 할 수 있나 싶다. 누가 나한테 그렇게 말해주면 아니 사실 네가 나한테 그렇게 말해준다면 당장이라도 다시 사랑에 빠질 것 같다. 내가 돌멩이라도 나를 좋아할 수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나를 귀찮아하는, 그 익숙한 눈빛으로 뭐라는 거야, 넌 한 번씩 정말 이상하다니까 넌 그렇게 말할 것 같다. 네가 돌멩이라도 내가 지금처럼 너를 좋아할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근무하러 왔는데 배가 너무 고파서 어제 교수님이 사다놓으신 핫도그를 우걱우걱 먹었다. 네가 핫도그라도 내가 너를 좋아할까. 파랑새도 놓아주고 돌멩이도 좋아하다보니 요즘처럼 쉬지도 못하고, 예뻐지지도 못하고 공부는커녕 과제도 매번 제대로 못하는 내 상황이 싫다가도 또 좋다가도 하루 세 ..

20140830

사람이 이렇게 무력해질 수가 없다. 나 없으면 죽을 것 같다던 사람이, 나 때문에 못 살겠다며 제발 놔 달라고 울어도 평생 내 편이라던 친구가, 어떻게 자기한테 이럴 수 있냐고 되려 나를 원망하며 떠나도 보고 싶던 영화가 매진되고, 사고 싶은 물건이 품절되고 몇 푼 벌자고 그 빗속을 뚫고 미친 듯이 달렸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사람 미워하는 거 아니라고, 화가 나는 마음보다 미안한 마음이 앞서라고 그렇게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라던 가르침에 어긋나는 나를 발견했을 때도, 씁쓸하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자기가 벌여놓은 일도 해결 못하고 사소한 목적도, 그럴 듯한 목표로 없이 그저 지기 싫어서, 그게 다였다. 나를 까맣게 잊고 행복해보이는 이에 대한 증오와, 무능력한 나 자신에 대한 분노가 결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