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월간 서예원
꾸준히 글을 쓰겠다는 다짐은 잊은지 오래다.
마지막 월간 서예원이 언제인지 살펴보니
무려 7월이다.
그저 덥고 목마른 계절,
아직 포도가 익지도 않은 그런 계절
8월과 9월도 어마어마한 일들이 많았지만
정말 어마어마했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기억이 안난다.
그러니 10월을 정리하려고 한다.
10월은 여러 모임이 많았다.
대학교 친구들, 토플스터디 언니오빠들, 운영팀 식구들
아니 왜 이렇게 인간들을 만나고 다녔을까
마치 코로나19 면역이라도 생긴 무적항체처럼..
믿을 수 없겠지만 나는 아직도 비감염자다.
어쨌거나 내가 10월만 기다린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휴가달이다.
우리 회사는 입사 후 2년마다 장기휴가를 주는데
나는 업무에 적응할 만하면 팀을 옮기고
또 적응할 만하하면 팀을 옮기는 바람에
6년차인 지금에서야 첫 리프레시를 썼다.
둘째, 샤인머스캣 출하가 종료된다.
아빠가 열심히 재배하고 엄마가 열심히 서포트하고
나와 언니가 열심히 홍보하고
그리고 내동생 아서가 열심히.. 맛있게 먹고 있는
아빠의 샤인머스캣 출하가 종료된다는 것은
몸과 마음과 시간과 체력이 널널해진다는 뜻이다.
셋째, 주요 프로젝트가 끝난다.
지긋지긋한 재검토과 컨펌의 연속, 드디어 끝난다.
만나서 불행했고 다시는 보지 말자 진짜 얄루
리프레시 휴가를 누구와 어디에서 어떻게 보낼지
꼼꼼히 적어둔 버킷리스트를 보고 있자니
아 난 왜 이렇게 소박한 사람일까, 애틋해지려는 찰나
오빠는 무슨 버킷리스트가 이렇게 소박하냐면서
자기 집 냉장고 청소나 해달라고 했다.
내 마음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운명공동체처럼 굴 때마다
정말 소름이 돋는다.
첫 주말은 도기와 의정부 여행을 갔다.
같은 경기도끼리 무슨 여행씩이나 붙이냐고?
용인은 충청도, 의정부는 북한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장기 휴가였지만 종종 회사에 나갔다.
TF에 급하게 투입되어 보고가 줄줄이었고
조직 워크샵도 준비해야 했다.
임원 브리핑을 무사히 마치고
내심 미안했는지 상무님이 밥을 사줬다.
우리는 친해질 수 있을까...?
날 좋은 어느 날에는 오빠를 만나러 갔다.
오빠 첫사랑의 추억이 묻어있는 회기에서 젤라또를 먹었다.
경희대와 고대를 거닐며
맛있는 것도 먹고 시시덕 거리면서 놀았다.
어느덧 삼십대가 되어버린 아줌마 아저씨지만
마음만은 스무살 언저리를 헤매는 찌질이들
더할 나위 없는 하루였다.
그 주 주말은 동해로 가족여행을 갔다.
동생이 급하게 이사하느라 짐을 다 챙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운 좋게 회사 휴양시설도 당첨되었다.
내가 제일 아끼는 사람들과
좋은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마지막 주에는 도기와 서울 여행을 갔다.
공원도 걷고 맛있는 감자칩도 먹고
수영도 하고 멋진 야경도 보고
샴페인을 들이붓다가 또 필름이 끊기고..
리프레시의 마무리는 운영팀 식구들이었다.
정확히는 웅이 아부지와 귀여운 딸들..
휴가달에 3번이나 만나서 지겨운 쑤와
거의 2년 만에 만난 림코
그리고 편애를 공식 인정한 웅이 아부지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웃고 떠들며 놀았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예수혜
진짜 너무 지겹고 좋은 또수현...
무려 4시간 웨이팅 끝에 금돼지식당에 입성했고
왕십리 곳곳을 쏘다니며 쑤의 초중고를 구경했다.
그녀들이 찐서울 깍쟁이라는 걸 잊고 있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10월이 끝나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야 했다.
아쉽지는 않지만.. 뭐랄까
그저 회사로 돌아가는 게 끔찍할 뿐
정말 그만큼 좋았다.
마음 깊이 애정하는 이들과 보내는 날들은
내가 혼자서는 못 살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주었고
결국 다시 괴로워질 거라는 결말을 드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