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칠 세쯤 되면 그럴듯한 커리어우먼이 될 줄 알았다.
하나를 알려주면 열 넷쯤 해내고, 개떡같이 말해도 콩떡같이 알아듣는 척척박사
세상 모든 일을 거뜬히 해결하는 난놈일 줄 알았다.
현실은 0.7인분을 겨우 채우는 1.3년차
어쩌면 그 이하일지도.
졸업과 동시에 취직하고 직장에서 인정 좀 받다가,
일찍 결혼해 적당히 재밌는 가정을 꾸릴 줄 알았다.
퇴근하고 남편과 맥주 한 잔 기울이며
어떤 새끼가 내 신경을 건드렸는지 시시콜콜 일러바칠 평안이,
내 아이의 밑그림 위에
가장 예쁜 색을 고르고 골라 함께 칠할 기쁨이 올지 모르겠다.
그렇게 이 한 몸 건사하기도 벅차고 (사실 귀찮고)
내 자리와 안위에 만족하는 평범한 소시민이 되었다.
그럼에도 더디고 서툰 나에게 일거리를 주는 곳이 있고
제멋대로인 나를 꽤 오랜 시간 기다려주고,
못마땅한 눈빛과 애틋한 마음을 나눠주는 사람들이 있음에 감사하다.
그들이 행복하기를.
한때 사랑했던 나쁜놈 나쁜년 모두에게,
신의 살짝 부족한 보살핌이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