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_Tempesta/202102

20210216

지새다 2021. 2. 16. 20:36

어제 읍내에서 사온 꽈배기를 집어먹으며 공부를 시작했다.

같은 스마일꽈배기 체인점인데 서울에서 먹던 것보다 훨씬 맛있다.

오빠가 대흥역 스마일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했는데

내가 더 맛있는 걸 발견했으니 놀려줘야겠다.

 

그렇게 공부를 슬쩍 하는 척 하다가 잠이 들었다.

기간제법 핵노잼에 시골 방구석은 온기가 오래 가기 때문이다.

 

전화가 요란하게 울리며 잠에서 깼는데

불행히도 언덕에서 차가 멈췄다는 엄마의 전화였다.

아빠는 이럴 줄 알았다고 궁시렁대며 엄마를 데리러 갔다.

 

이곳은 오늘 오후부터 대설주의보였다.

 

엄마를 구하러 갈 차도 없고

설령 차가 있더라도 그걸 합법적으로 끌고갈 면허가 없는 나는

조용히 눈을 쓸었다.

 

벌써 눈이 내 종아리까지 쌓였고

이 마을의 유일한 젊은이로서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털신과 목장갑으로 중무장한 채 넉가래를 들었다.

할아버지는 거침없이 눈을 밀어대는 나를 보시더니

군대 가도 잘 해낼 으뜸 병사라고 하셨다.

 

이로써 나의 주특기가 청소, 빨래, 설거지 등 집안일과

넉가래와 함께 하는 제설작업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괴상한 기합소리를 내며 차고에 도착하니

허약한 엄마 차를 길바닥에 버리고 돌아온 동지들이 있었다.

 

엄마는 추워 죽겠고 당장 차를 갖다버리겠다고 하면서

여자 혼자서는 절대 살 수가 없고

여자가 아니라 그 누구도 혼자서는 멀쩡히 살 수 없고

길바닥에서 차가 멈추면 어쩔 것이며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 아무도 데리러 오지 않는 삶이 말이나 되냐면서

혼자 살 생각은 하지도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숨도 쉬지 않고 말하는 걸 보니 우리 엄마 쇼미더머니

진짜 드랍더비트.

 

나는 넉가래를 한 손에 들고 털신을 질질 끌면서

누가 날 구하러 오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이 폭설 속에 누굴 구하러 가는 삶이나 아니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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