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새다 2017. 3. 2. 10:31

아빠는 캠코더로 우리를 담곤 했다.

엄마 아빠는 항상 바빴고

어리디 어렸던 언니는 자기보다 더 어린 동생들을 위해 밥을 하고 청소를 했다.

 

대부분의 둘째들이 그렇듯 나는 식탐이 많았다.

심지어 먹는 속도가 느려 언니랑 동생이 고기반찬을 다 먹어버리면

그렇게 속상할 수가 없었다.

 

늘 애정을 갈구했지만 내 몫은 크지 않았다.

 

막내는 기 쎈 누나들때문인지 덩치가 작았다.

나랑 한 살 차이인데 다들 세네 살은 차이나는 줄 알 정도로.

지금은 누나들보다 훨씬 커져버린 막내가 오늘 아침 캠코더에 남아있던 동영상을 복구해 보내왔다.

 

나 역시 훌쩍 컸다.

사실 이렇게 커져버린 건 꽤 오래 전인지도 모르겠다.

 

구름이 구름 모양으로 생기지 않았다는 걸 알았을 때,

모든 나무에 빨간 사과가 열리지는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

이미 어른이 된 건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이 집을 그리라고 할 때면

나는 우리집과 조금도 닮지 않은 시골의 어느 외딴 집을 그렸다.

두 개의 산, 그 왼쪽에는 노란 해를 그리고

오른쪽 아래쯤에 세모난 지붕을 가진 집, 굴뚝으로는 동그란 연기 세 개,

집 앞으로 흐르는 강에는 물고기 네 마리를 그렸다.

 

그 집은 그림이었다.

우리집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우리집이 아닌 것도 아니었다.

그 안에 살고 있는 누군가는 우리집처럼 행복했을지도 모르니까.

 

이 비가 그치고 돌아가는 집은 19년 전의 그 집이면 좋겠다.

엄마 아빠를 기다리며, 발 뒤꿈치를 들고 창 밖을 내다보던 그 집이면 좋겠다.

언니랑 동생이랑 머리를 맞대고 과자를 한알씩 나눠먹던 그 곳이면 좋겠다.

 

크리스마스도 아닌 어느 날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강강수월래 한 바탕하고

푹 잠들어버리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