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a vita da vivere, come il cuore va./diario 276

20210522

푹 자고 일어나 공원을 산책했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아이들을 포함한 가족단위가 많았다. 좋아보이네, 부럽다. 어제 10시간 넘게 일했으므로 나를 위해 아아와 스콘을 쏘기로 했다. 스벅에 줄이 길어 점점 긴장되고 혹시 앞사람들이 스콘을 다 사가면 어쩌나 불안했지만 다행히 3개 무사히 득템! 집에 돌아와 파스타를 해 먹고 디저트로 스콘도 하나 까 먹었다. 대학생때 즐겨듣던 노래를 틀어놓고 화장실 청소를 했다. 아마도 이곳에서는 마지막이지 않을까? 창문을 활짝 열고, 얼음 다 녹은 아아를 마시며 어제 못 끝낸 일을 좀 해보려는데 아니 날씨 너무 좋다, 진짜 너무하네 워라밸 개나 주고 분당 까치집은 어제보다 더 커졌다.

20210406

아무것도 안하자니 마음이 허전하고 또 뭔가를 하자니 하기 싫어 죽겠다. 배는 고픈데 먹으면 살이 찌고 먹고 싶은 거 다 먹자니 운동량 늘리기가 겁나고 대충 살자니 내가 너무 아깝다. 육아휴직을 시작한 날 이전에 피보험 단위기간 통산하여 180일 이상이어야 하고, 월 통상임금의 40%를 받게 되는데 하 진짜 쓸모있는 핵노잼이다. 새로 산 코트를 가만히 바라보니 아래 단추가 축 늘어져있다. 남들 옷은 잘만 고쳐주면서 내 옷은 왜 손도 대기 싫은 걸까. 피곤한데 자기 싫고 안 졸린데 자고 싶다. 콩나물 넣은 차돌육개장 맛있겠다.

20210331

동생이 갑작스럽게 이사를 하게 되면서 그동안 무전취식했던 기생충은 군말없이 청소를 하고 이삿짐을 날랐다. 제주맥주 한 캔 마시고 거실에 뻗었는데 10년 전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띡- 카톡이 왔다. 글쎄 내가 부서 좀 옮기겠다고 반 년동안 고생한 썰이며 전셋집 주인의 등쌀에 못이겨 내집마련을 앞두고 있는 이야기, 대표님 면담때문에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 구구절절 늘어놓고 그러고보니 나만 나이먹는 게 아니구나, 열아홉 고딩이 소시민이 되는 동안 물총놀이를 좋아하던 네 살 꼬맹이는 중학생이 되었고 선생님은 책임질 게 많아진 으른이 되었고 그러니까 인생이 도대체 뭐냐는 고딩과 마흔이 되어도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는 선생님 사이에 이야기보따리가 한 자락 쌓이고 있었다.

20210315

요즘 들어 엄마의 새로운 취미는 나를 무릎에 눕히고 머리를 땋는 일이다. 같은 반 여자애들이 양갈래 삐삐 머리를 하거나 호박만한 리본을 달고 촐래촐래 걸어올 때 내심 부러웠던 건 사실이다. 왜 나는 선머슴같은 커트머리에 위아래 전혀 안 어울리는 옷을 입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노란 목폴라에 초록색 니트조끼, 갈색 골덴바지는 부조화 끝판왕에 억지로 끼워맞춘 나무 한 그루가 아닐 수 없다. 그 시절 엄마는 회사와 집안일에 치여 머리를 매만져주지 못했다. 언니의 긴 머리카락을 노란 고무줄로 질끈 묶어주기에도 벅찼고 엄마의 고된 시간을 줄이기 위해 나라도 커트머리를 고집해야 했다. 엄마는 머리 한 번 땋아주지 못한 지난 날을 아쉬워하며 자꾸만 머리카락이 빠져 끝내 탈모샴푸까지 쓰게 된 둘째 딸의 머리를 가만히 쓸..

20210311

느지막이 일어나 세수도 안 하고 집을 나섰다. 예전에야 3시간 자면서도 시간이 부족하다며 빨빨거리고 총총거리고 다녔지만 지금처럼 남는 게 시간뿐인 백수는 11시간을 자도 끄떡없다. 어김없이 분당공원으로 향했다. 나만의 코스로 천천히 걷다보면 정확히 1시간 20분 코스다. 집에 돌아와서 호박즙을 데웠다. 언니는 3개씩 먹는다고 했지만 왠지 그러다 살찔 것 같아서 2개만 먹기로 한다. 호박즙을 마시고 또 녹차를 마시고 마지막으로 레몬차를 마셔야 하는데 병의 밑바닥이 보인다. 내일부터 어떡하지 싶지만 매실차를 마시면 된다. 시험은 2달이 채 안 남았지만 여전히 공부하기 싫은 백수 중의 상백수다. 유튜브에서 연애세포를 깨워주는 달달한 노래모음을 틀었다. 뭔가 마음이 꽁기해지고 살랑거릴 때쯤 광고가 맥을 뚝 끊는..

20210212

공부하기 싫은 날에는 역시 일기를 끄적이는 게 제일이고 잡다한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으니 교원노조법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재택근무가 1년을 넘어가면서 나는 분당 방구석보다 옥천 본가가 익숙한 사람이 되었다. 현관부터 화장실까지 스무 걸음이 채 되지 않는 원룸이 공허하게 느껴지고 시시콜콜 대화를 나눌 존재가 줄리앙뿐이라는 사실이 꽤나 허망했다. 낙엽을 쓸고 방바닥을 닦고 물고기 밥을 주며 살아가던 어느 날, 난데없이 명절이 찾아왔다. 어린 시절에는 둥구나무 아래에서 고모들과 고모부들과 오빠들을 기다리며 (그들이 양손 가득 사올 과자와 주머니 넉넉히 채워줄 용돈도 물론 기다렸다) 째깍째깍 시계를 보고 또 보고 반대쪽으로 오는 건가 왜 안 오지 또 보고 아무튼 나에게 명절이란 기다림이었고 행복이었..

20210122

왠지 마음이 쪼그라드는 기분에 평소보다 일찍 누웠다. 역시 잠이 오지 않아 노래 한 곡을 틀어놓고 눈을 감는데 갑자기 이게 꿈은 아닐까, 생각이 들면서 조금 다행이기도 하고 또 조금 허무하기도 하면서 내가 눈 떴을 때 돌아가 있을 곳은 어디일까 상상해보았다. 첫 번째 후보로 대학교가 있다. 그야말로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는 사시나무 시절인데 최근 들어 섹션 선배들과 친구들이 계속 꿈에 나오는 걸 보니 말로는 최악이었다,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바득바득 우기지만 분명히 행복했다는 걸 누구보다 내가 잘 아는 탓이다. 가족을 떠나 혼자 살면서 모든 결정과 책임이 오롯이 나에게 있었고 그러니까 어떤 사람을 만나 어떤 상처를 주든 상처를 받든 어떤 실수를 하든 잘못을 하든 다 내 몫이었다. 그래서인지 서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