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a vita da vivere, come il cuore va./diario 276

20211008

"이거 딱 반 병만 마시고 자요." 사수는 와인 한 병과 치즈를 건넸다. 아주 잘하고 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된 것뿐이라고 위로했지만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거라는 걸 안다. 또 그렇다고 내가 죽을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쓰리아웃 당했다고 다시 라운드 못 오르는 것도 아니고 인생 뭐 어떻게든 굴러가겠지만 아마 한 병 다 비우지 싶다.

20210928

나는 여전히 일을 못한다. 세상에 예측할 수 없는 버그란 없고 나는 기어코 그걸 놓치고 만다. 오늘도 꼬박 샐 게 뻔하니 뭐라도 좀 먹을까 하다가 관둔다. 떡볶이도 먹고 싶고 탕수육도 먹고 싶고 먹고 싶은 걸 나열하자니 우주를 다 채울 수 있는데 여전히 살이 찌는 게 무섭고 텅텅 빈 통장잔고가 두렵다. 나는 여전히 잠을 잘 못 잔다. 여전히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다 타고 그러니까 스산한 가을비에 눈물이 나고 떨어지는 낙엽에도 우울하고 슬픈 노래를 들으며 세상 비련의 주인공이 된다. 그저 이쁨만 받고 사랑만 받다가 맛있는 음식 배터질 때까지 먹고 푹 자고 싶다. 어느 노래가사는 여전히 아름답냐고 묻는데 나는 참, 변함없이 후지고 구질구질하다.

20210729

잠 못 드는 새벽이었다. -우리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요. 낮은 목소리가 방 안 가득 울렸고 그럼요,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놀라 하마터면 노트북 전원을 꺼버릴 뻔 했다. 보통 이렇게 사는 걸 잘 살고 있다고 하나? 아닐 것 같은데. 어.. 그러니까.. -그냥 해본 말이에요. 신경쓰지 마세요. 두 번의 혼잣말을 끝으로 화면이 꺼졌다. 내 망설임이 그를 죽였다.

20210609

아직도 수요일이다. 밀린 일본어 과제를 보고 있자니 한숨이 나오고 다이스키 일본어? 이이에 와타시는 너를 다이스키하지 않아.. 직장인 구몬짤이 내 얘기가 될 줄 몰랐던 젊은 날이여. 그래서 왜 api에 누락이 발생했을까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데 세상에서 내가 제일 귀여운 줄 아는 스터디 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잠깐 나오라는 드라마 남주 같은 대사에 코웃음을 치며 내려갔고 업무미팅 갔다가 득템했다는 도넛 한 상자를 건네 받았다. 나는 솔직히 너무 감동받아서 말도 더듬고 눈가도 좀 촉촉해진 것 같은데 언니는 또 보자며 쿨하고 멋지게 (그리고 비싼 차를 몰고) 사라졌다. 먹고싶어 죽겠는데 세번이나 실패했다고 몇차례 투정부리긴 했지만 (계속 품절이었고 최근에도 까여서 내심 속상했던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 성..

20210528

우리집 골목을 아스팔트로 덮은 건 10년도 더 된 일이다. 아스팔트 틈새로 씨앗이 날아들어 꽃이 피었는데 그 와중에 번식을 이어가 나름대로 꽃들이 무성하게 되었다. 왜 하필 저 비좁고 딱딱한 곳에 자리잡았는지. 엄마는 날이 따뜻해지기만을 기다렸다가 그 꽃들을 마당 화단에 옮겨 심었다고 한다. 보름 넘게 시들시들하고 힘들어하더니 이제야 제 모습을 찾고 쌩쌩해졌다며 사진을 보내왔다. 엄마가 아침마다 아스팔트 꽃더미를 서성거렸다는 걸 안다. 출근길이 늦었다면서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속삭이는지 저 꽃더미가 정말로 알아들을 수나 있는 건지. 오늘에서야 그 궁금증이 풀린 것 같다. "고마워 잘 견뎌줘서. 넓은 곳에서 마음껏 크라고 그랬던 거야. 이제 좋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