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a vita da vivere, come il cuore va./diario 276

20191121

동정이나 충고같은 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고생을 사서 한다, 그렇게 잠 안 자면 치매걸린다는 소리나 들어봤지 그래도 네 덕에 몇몇의 하루는 좀 나아졌을 거라는 위로는 근처도 못 갔다. 고작 내 몫 하나 살고자 했을 뿐인데 남들에게 싫은 소리나 듣고 앉아있자니 인생이 원래 이런건가 싶다. 두세 시간 겨우 눈 붙이며 일해도 이 도시에는 번듯한 내 집 하나 마련할 수 없다. 저 놈의 회사는 왜 밤새 불이 꺼지지도 않는지 365일 환한 조명을 볼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힌다. 상사는 자기 잘못을 나한테 뒤집어씌우고 후배들 쫓아다니며 뒤치다꺼리 하는 것도 정말 지겹다. 그들은 여전히 내 인생에 권리를 주장하고 공기가 너무 차고, 손이 시리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나쁜 년일 수 밖에 없지만.

20191117

기대하고 실망하고, 그 일련의 과정이 귀찮고 보잘것없게 느껴져.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왜 자꾸만 반복되는 거야? 계속 묻다 보면 나야. 자연스럽게 의식의 흐름에 맡기면 또 나거든. 크고 작은 변수에 휘둘리며 당장이라도 다 때려치고 싶고 그깟 변수 하나 재끼지 못하는 너를, 결국 그거 하나를 못 봐주는 나야. 차라리 남 탓을 하고 싶어. 내가 왜 나를 탓해야 해? 난 나를 예뻐하기만 하며 살고 싶어.

20191106

그러나 그 모든 것은 허울이며 거짓이었고 내가 원하고 동경하던 이들이 사실 얼마나 나약한지 깨달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과 멀어지고 싶다고 수백 번도 넘게 생각했다. 때로는 내가 다정하게 건넸고 때로는 내가 손에 쥐어준 줄도 몰랐던, 특권과 책임을 철회한다. 내 인생에 권리를 가진 타인은 없고 이 길의 끝에 남는 것은 결국 나 혼자여야 한다.

20191029

별이 내려앉은 퇴근길, 저 멀리 아빠가 우두커니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는 내 가방을 메고 평소보다 느리게 걸었다. 이제는 열아홉도 아니고, 딸기아이스크림을 좋아하지도 않지만 여전히 아빠의 서툰 방식을 사랑했다. 엄마는 빨래를 널고 과일을 곱게 잘라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엄마는 나에게 혼자서도 잘 살아야 한다고, 남들에게 힘든 내색을 하면 그게 약점이 된다고 신신당부를 하던 사람이다. 이제와서 타인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라고 하니, 통할 리가 없다. 그렇게 엄마와 아빠는 제 자리로 돌아가고 나만 여기 멈춰 서 있다. 작은 기침에도 그들의 온기가 빠져나갈 것 같아 꼼짝없이 서서 숨을 아주 작게 내쉬었다.

20191005

6교시 수업이 끝나고 초밥을 먹기로 했다. 선배는 여느 때와 같이 늦었다. 이쯤이면 먼저 와서 나를 기다리는 게 낯설거야, 라고 생각했으나 그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억울하고 서운했지만 차마 투정부리지 못했다. 밥 한 끼 같이 먹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고 두 시간 마주앉은 기억으로 한 달은 버틸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후로 선배를 만나지 않았다. 마지막 만찬이라는 거창한 수식어도 없었고 뭐 그렇다 할 감정싸움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포기하면 편할 거라는 말로 나를 단념시켰다. 초밥집이 사라진 자리에는, 국물 자작한 떡볶이집이 생겼다. 느리고 어리숙한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고, 나의 스무 살을 휘저었던 꽃송이도 저문 지 오래였다.

20191001

그리고 내가 그토록 바라던 삶은 볕 좋은 어느 날, 느즈막이 일어나 연필을 끄적이다가 좋아하는 사람과 짜장면을 나눠 먹고 동네를 걷는 것이었다. 가을이 오다만 어느 오후에, 언니랑 한강변을 산책하며 수다를 떨고 다시 내 일터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어쩌다 길에 떨어뜨린 행복이 다른 사람까지 웃게 만들었으면, 하고 욕심도 부려보고 간혹 이렇게 평온한 하루가 온전히 내 몫이었음에 우쭐하기도 하면서 그저 그렇게 사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