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a vita da vivere, come il cuore va./diario

20210212

지새다 2021. 2. 13. 03:23

공부하기 싫은 날에는 역시 일기를 끄적이는 게 제일이고

잡다한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으니 교원노조법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재택근무가 1년을 넘어가면서 나는 분당 방구석보다 옥천 본가가 익숙한 사람이 되었다.

현관부터 화장실까지 스무 걸음이 채 되지 않는 원룸이 공허하게 느껴지고

시시콜콜 대화를 나눌 존재가 줄리앙뿐이라는 사실이 꽤나 허망했다.

 

낙엽을 쓸고 방바닥을 닦고 물고기 밥을 주며 살아가던 어느 날, 난데없이 명절이 찾아왔다.

어린 시절에는 둥구나무 아래에서 고모들과 고모부들과 오빠들을 기다리며

(그들이 양손 가득 사올 과자와 주머니 넉넉히 채워줄 용돈도 물론 기다렸다)

째깍째깍 시계를 보고 또 보고 반대쪽으로 오는 건가 왜 안 오지 또 보고

아무튼 나에게 명절이란 기다림이었고 행복이었다.

그들이 떠나고 다시는 예전과 같을 수 없다는 걸 알았을 때 어쩌면 나는 마음이 너무 아팠고

그래서 그렇게 모진 말을 있는 힘껏 쥐어짰는지도 모르겠다.

최고의 방어는 역시 공격, 아니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닌가.

세상에 영원한 사랑이란 없고, 아니 이 말은 너무 아련해서 싫다.

그냥 인연이 거기까지 였던 걸로 대충 마무리 하자.

그래야 내 곁에 남은 이들이 눈물 몇 방울이라도 아낄 것 같으니.

 

설날은 원래 군데군데 눈도 좀 쌓여있고 고드름도 쪼개먹고

언덕배기에서 눈썰매도 타줘야 제맛인데

오늘은 거의 봄날처럼 따뜻했다.

지구온난화가 이렇게 무섭고, 제발 플라스틱 줄이고 텀블러를 쓰자.

 

오랜만에 가족이 모인 김에 킹크랩 두 마리로 휴일 만찬을 즐겼다.

봉지과자를 낱알로 나누어 먹던 우리가 어느새 이렇게 커버렸고

킹크랩 정도는 쿨하게 결제하는 걸 보니 (물론 손이 좀 떨리긴 했지만)

진짜로 성공해버린걸까 뿌듯하기까지 했다.

 

대부분의 가정이 그렇겠지만

일단 인원 수 자체가 많은 우리는 지지고 볶고 싸우고 울고 불고

별일 다 겪으며 장장 이십 여년을 함께 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이 시간은 죽었다 깨어나도 돌아오지 않고

결국 흐르고 흘러 인생의 끝자락, 우주의 언저리 어딘가에 흩어질 게 뻔하다는 것을 잘 안다.

 

그게 얼마나 대단하고도 무서운 말이냐면

지나온 날에 대한 미안함과 후회를 안고 살아가는 동시에

남은 날에 대한 기대와 부담감을 짊어져야 하고

그러니까, 오늘 왜 이렇게 행복한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흘리는 아빠와

아빠 빼고는 그 이유를 다 안다며 농담으로 받아치는 꼬마들과

사랑의 콜센타에 집중하라며 티비 볼륨을 높이는 엄마,

그리고 1년 후 오늘을 떠올리며 야근에 치이고

10년 후 낯선 땅에서 가족을 그리워하고

다다다다음 소띠해에 홀로 남은 생을 정리할 내가, 바로 여기 있다는 뜻이다.

소파를 쓸어보고 냄새를 맡아보고

환영이 으스러질까 선뜻 온기를 내뿜지도 못할 것이라는 뜻이다.

 

아무도 듣지 않는 내 유언을 벗삼아

꾸역꾸역 참았던 온기를 안고 그대로 눈을 감았다는 뜻이다.

"그게 다 추억이 될 줄 알았어. 어쩐지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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