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a vita da vivere, come il cuore va./diario

20201203

지새다 2020. 12. 3. 21:22

수다빌에서의 바캉스, 수캉스가 돌아왔다.

오늘은 최선을 다해, 평소와 다르게 지내겠다고 다짐했다.

 

느즈막이 일어나 매실차를 끓이고 호박즙을 데웠다.

평소와 다르게 지내자더니 첫 스타트부터 루틴이다.

 

창문을 열어 환기시키고 빨래를 돌렸다.

건물에 건조기가 생겨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나중에 더 큰 집으로 이사가게 되더라도 건조기는 꼭 사야지.

 

빨래가 돌돌 소리를 내며 건조되는 동안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요가매트와 폼롤러를 왜 이렇게 늦게 샀을까.

벌어서 나한테 쓰자 제발.

 

놀랍게도 눈 뜨고 일어나 4시간 동안 한 일이 모두 평소와 똑같았다.

아무것도 안 하고 휴가를 즐기겠다며?

말만 번지르르하고 몸뚱이는 그저 규칙, 그놈의 규칙을 따라대니 한숨이 절로 난다.

 

며칠 전 엄마가 요리해서 보내준 닭발을 꺼냈다.

썰어서 냉동해둔 파를 넣고 국물이 자작해질 때까지 졸였다.

김과 단무지가 없어서 주먹밥은 만들지 못했다.

물론 마요네즈도 없다.

 

지난 주에 사온 소주와 맥주도 꺼냈다.

문 닫을 시간이라며 눈총을 주던 편의점 직원의 얼굴과

반창고 오백 개를 붙이고 스타킹 색깔이 맞네 안 맞네 일장연설했다던 오빠네 고객이 떠올랐다.

연관성 없는 둘이 오버랩되는 게 이상하긴 하지만

아무튼 그 여자는 개수작을 부렸던 것 같다.

 

빈 속에 닭발과 소맥을 먹으니 역시 기분이 구렸다.

츄파춥스 콜라맛과 딸기우유맛을 하나씩 까 먹으며 청소를 시작했다.

 

블라인드와 창문, 창틀을 닦다가

맞은 편 집 베란다에 앉아 계신 할머니와 눈이 마주쳐 목례를 했다.

항상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웬일로 할머니가 계실까?

 

오랜만에 전자렌지도 구석구석 닦는데

지난 번에 전자렌지 안에서 바사삭 깨진 그릇의 잔해인지

유리조각에 손가락 세 군데를 베었다.

인생 역시나 쉽지 않다는 걸 체감한다.

 

적막한 집구석에 없던 우울증도 생길 것 같아 티비를 틀었다.

마침 OCN에서 노팅힐을 해 주는데

세상에 이 유명한 고전물을 이제서야 봤다니 낯부끄럽다.

"나 같은 머저리는 눈부시고 빛나는 너에게 어울리지 않아" 라든가

"사랑하기 때문에 너를 보내줄테야" 류의 대사가 등장해 머리가 지끈했다.

저런 핑계대는 놈들은 제발 문에 발 찧이고 지하철에서 새치기 당했으면.

어딜 가나 머저리는 많고 신파가 곧 돈이 되는 세상이니 어쩔 수 없을 거다.

 

노팅힐이 끝나고 이어서 나의 사랑 나의 신부가 방영되었다.

또 마침 잘 됐다며 이제야 비로소 로맨틱코미디를 보나 했더니

극 중에서 영민씨는 그저 이혼 당하고 싶어 발악하는 것 같았다.

잘못을 저렇게까지 연달아하면서 염치도 없을 수 있구나, 싶지만

역시 신파가 돈이 되는 세상이다. 신파 만세.

 

동네 공원을 산책하지 않았고, 영어 공부도 하지 않았다.

55분 짜리 근력운동과 40분 짜리 유산소운동도 당연히 안 했다.

매일 같은 시간 걸려오는 언니의 전화도 못 받았고

일하고 공부하느라 바쁜 사람한테 놀아달라고 칭얼거리지도 못 했다.

 

그저 3일이나 지나버린 11월 달력을 넘기며

올해도 별 일 없이 살아버렸고 아니 살았고,

사실 "살아버렸다"는 말이 한때 우리집에서 유행이긴 했지만

그건 오빠가 언니한테 일방적으로 전파한 유행어로서

언니가 이마를 탁 치며 살아버렸다고 할 때마다 엄마의 눈총을 받아야했다.

어쨌든 올해도 별 일 없이 살았다는 안도감과

역시 인생은 혼자일 수밖에 없고,

내가 할머니가 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사실만 남았다.

 

당장 내일부터는 새로운 곳을 찾아 자소서를 쓰고 면접을 보고

다음 주에는 또 토익시험까지 있고

그 다음 주에는 야간당직이 예정되어 있지만

역시 마무리를 잘 하는 놈이 추억으로 남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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