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a vita da vivere, come il cuore va./diario

20200203

지새다 2020. 2. 3. 10:07

얼마 전 본가에 내려가 장롱 깊숙이 쌓아둔 짐을 정리했다.

나는 스몰라이프를 추구하는 데다가 미련같은 걸 남기는 사람이 아니기에

싹 다- 장작더미에 밀어넣겠다며 호언장담했지만

옆에서 지켜보던 엄마와 언니는 코웃음을 쳤다.

 

땅꼬맹이 시절부터 모아온 편지들 중에는

"내가 뭘 잘못했니? 기분 나빴다면 미안하다"는 내용이 다수였다.

심통만 부리고 그 이유는 말해주지 않는 고약한 심보를 타고난 탓이다.

그렇게 치사하고 옹졸한 성격은 열여섯 살까지 이어지고

 

마침내 고등학교 시절에는 그야말로 세상에 둘도 없는 천사가 되는데

이때 받은 편지의 대부분은

"고맙다"와 "앞으로도 잘 지내자" 등의 내용이었다.

물론 고등학교 3년 간 유지되던 온순하고 평화주의적인 성격은 오래가지 못했다.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나댐의 수치는 극에 달했고

사회에 나와서는 성격이 급격히 더러워지며 주어진 환경에 부단히 적응해갔다.

 

비교적 평탄하고 유쾌했던 인생에도 크고 작은 위기가 닥쳤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나 역시 성인이 되면서

"내가 좋아하는 이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와

"인간은 절대로 고쳐쓸 수 없다"는 명제에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그것은 자연의 이치이자 인생의 진리,

지금까지 이보다 분명하고 명확한 진실을 찾지 못했다.

 

서울에 올라와 가장 많이 치고받고 싸우면서도

바보같이 밑지는 장사를 해 온 오라방의 편지가 가장 많았고

자기 신세한탄과 비속어로 빼곡하게 채운 대장의 편지,

함께 비틀거리며 나의 짝갬성을 지지하던 줄리아의 편지,

이제는 안부조차 물을 수 없게 된 옛 단짝의 편지가 그 다음을 이었다.

 

마음 깊이 묻어두지 못한 글과 사진도 슬쩍 들추어 보았다.

아직 내가 안 괜찮은 건 아닌지 다들 눈치를 보는 듯 했지만

지금까지 버틴 게 아까워서라도, 스스로에게 혀를 끌끌차고 싶었다.

 

그 쓰리고 아픈 것들을 왜 버리지 못했을까,

아쉬움과 후회는 별개의 문제였고

나는 그저 오늘 내 몫을 잘 살아내고 나면 그만이었다.

 

는 개뻥이고, 그 후로는 아무것도 정리하지 못했다.

저기 잔뜩 쌓인 일기에 어떤 이야기가 써 있을지 분명했기 때문에.

 

왜 스물넷이 되도록 일기를 쓴 건지, 그러지 않았다면 다 잊고 살 수 있었을까.

그저 박스에 몽땅 털어넣고 마당에 내놓으면 그뿐인데

저 문턱이 오늘따라 너무 높아보였다.

 

내내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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